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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정동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해남윤씨 3대 유적지

                        
한천동(寒泉洞) 시원(始源) 도선산(都先山)

                        
덕정동(德井洞) 세거시원지(世居始原地)

                        
연동(蓮洞) 500년 요람지(搖籃地) 

 


 

 

 

 

 덕정동 세거 시원지

 


     중시조(中始祖) 사온직장영동정
(司直長令同正) 휘 광전(光琠)께서 공민왕 3년(恭愍王, 1354년)에 아드님에게 증여한 노비문서(奴婢文書)에 탐진(耽津,지금의 강진) 감무(監務)가 감수한 수결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해남윤씨가 강진(康津) 땅에서 살았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현재 문헌상에 나타난 세거지(世居地)는 전남 강진군 도암면 덕정동(德井洞)입니다.

     덕정동(德井洞)에는 우리 해남윤씨의 선조님들이 누대(累代)에 걸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자료들이 문헌상으로 또는 실물로 남아 있습니다. 선조님들이 공부하시던 서제터가 지금도 남아있어 서제동(書齊洞)이라 불리우고 있고 공부하시던 집에 당호를

우애당(友愛堂)이라 이름지어 걸어놓고 형제간의 우애를 다짐하였다는 문헌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때 어초은공께서 지었다는 한시 오언절구 한 수가 남아 있습니다. 그 시를 소개하면 (처자는 의복과 같고 형제는 수족과 같다. 의복은 찢어지면 꿰매입을 수 있으나 수족은 끊어지면 어찌 이을 수 있겠는가?) 이 시는 젊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면 아내를 경시하는 것같이 느낄 수도 있으나 본 뜻은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는 시구입니다.

     덕정동(德井洞) 파산등(坡山嶝)에는 통례원 좌통례 휘 사보(思甫) 내외분, 호조참의 휘 사서(思瑞) 내외분, 병조참의 휘 경(耕) 내외분, 적순공 휘 효인(孝仁) 내외분, 진사공 휘 효의(孝義) 내외분, 참봉공 휘 효례(孝禮) 내외분, 정릉 참봉공 휘 효원(孝元) 내외분의 묘소가 있으며, 약간 떨어져 서기산(瑞氣山) 지맥에 부정공 휘 천우(天祐) 내외분, 사정공 휘 구(溝) 내외분, 생원 휘 신(莘) 내외분 삼대의 묘소가 있고, 들건너 죽사봉(竹寺峰)에는 호군공 휘 종(種) 내외분의 묘소가 있습니다.

      덕정동(德井洞)에 선조님들이 기거하시던 집터가 남아있고 덕정동 파산등을 비롯하여 인근의 산에 선대들의 묘소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덕정동(德井洞)이 해남윤씨의 세거시원지(世居始源地)임은 확실하다고 하겠습니다.

     자손들이 번성하면서 덕정동(德井洞)을 중심으로 인근 반경 삼십리 이내에 집성촌을 이루면서 살아왔습니다. 대표적인 큰 마을만 열거하면 지석리(支石里), 부춘리(富春里), 항촌(項村), 용산리(龍山里), 금당리(金塘里), 수동(水洞), 화방리(花坊里), 벽송리(碧松里), 신평리(新坪里), 계라리(桂羅里), 교동(橋洞), 대벌(大筏) 등입니다. 지금은 산업의 발달로 직장찾아 서을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우리 해남윤씨들이 누대에 걸쳐 집성촌을 이루면서 살아온 마을에는 지금도 해남윤씨들이 많이 살고 있고 선대들이 거기에 있어 큰 명절에는 귀성 및 성묘차 줄을 이어 찾아오고 있습니다.

     
우리 해남윤씨들이 누대에 걸쳐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리는 세장비(世葬碑)가 화방, 벽송, 항촌마을 입구에 지금도 서 있습니다.

      덕정동(德井洞)의 지세를 살펴보면 소백산맥이 남하하다 영암 땅에 이르러 명산 월출산月出山)을 만들고 그 지맥이 다시 남쪽으로 뻗어오다 강진 땅에 와서 영산 서기산(瑞氣山)을 만들었는데 그 산 아래 자리잡은 마을이 덕샘골 덕정동(德井洞)입니다. 북쪽으로는 멀리 마산만이 트여있고, 남쪽으로는 우리 해남윤씨 도선산 한천동 주산인 덕암산(德岩山)이 있고, 동쪽으로는 호군공묘소가 있는 죽사봉(竹寺峰)이 있고, 서쪽으로는 해남읍의 주산인 금강산(金剛山)이 있습니다. 남쪽 멀리 바라보면 탐진강(耽津江)이 흐르고 있고 덕정동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산들이 겹겹이 둘러 싸여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누가 봐도 천혜의 동천지지(洞天之地)임을 느끼게 됩니다.

     옛날부터 명산밑에서 큰 인물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孟子)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라고 했는데 우리 선조님들 중에 명경홍유(明卿鴻儒)들이 많이 나셨는데 산세에 힘입은 바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덕정동(德井洞)에 있는 제각 추원당은 조선조 인조27년(仁祖, 1649)에 건축한 웅장한 고건물로 호남에서는 보기드문 제각입니다. 고산공께서 주관하여 지으셨는데 각파 문중에서 헌납한 건축비 내역, 건물규모 및 건립동기 등을 기록한 창건록이 남아 있습니다. 전라남도가 서기 1990년에 시도민속자료 제 29 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으며, 보수 등은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덕정동 추원당 개요 참조)


     우리 해남윤씨가 조선 숙종 25년(肅宗, 1702)에 최초로 발간한 족보(임오보) 목판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데 귀중한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전라남도가 지방유형문화재 제 168호로 지정하였고, 농업박물관에서 전시한 바도 있습니다.

     덕정동(德井洞)은 문재(門財)로 많은 전답과 임야를 갖고 있어서 제향때 많은 자손들이 모여도 숙식에는 불편함이 없습니다. 옛날 농경시대에는 강진 원님보다 해남윤씨 덕정동 공임(公任)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들이 우스겟소리로 전해 왔는데 지금은 산업이 발달되면서 전답의 가치가 떨어져 옛날같지는 않지만 지금도 문중 운영에 재정적 어려움은 없습니다. 해마다 가을 시제때가 되면 한천동 도선산을 비롯 덕정동 일대에 있는 파조(派祖)들의 성묘차 찾아오는 후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