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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규

 

 

 


 

 

 

   만천(萬千)의 운잉(雲仍)은 일조(一祖)의 자손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파세(派勢)의 성쇠(盛衰)는 다를지라도 종족간에 상하우열(上下優劣)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본보는 일시동가(一視同家)의 대원칙하에 평화와 돈목(敦睦)을 위주로 작성한다.
   본보작성의 요령은 일찍이 문중대표자 전체회의에서 결의한 작보요항(作譜要項)을 근기(根基)로 하다.

 


 

 

 

 

1. 해남윤씨(海南尹氏) 보규(譜規)

 


   만천(萬千)의 운잉(雲仍)은 일조(一祖)의 자손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파세(派勢)의 성쇠(盛衰)는 다를지라도 종족간에
   상하우열(上下優劣)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본보는 일시동가(一視同家)의 대원칙하에 평화와 돈목(敦睦)을 위주로 작
   성한다.
   본보작성의 요령은 일찍이 문중대표자 전체회의에서 결의한 작보요항(作譜要項)을 근기(根基)로 하다.

 중조(中祖) 좌의정(左議政) 휘(諱) 환(桓), 진사(進士) 휘(諱) 녹화(祿和) 부자(父子) 양공사적(兩公事蹟)과 금구의록(金
     溝疑錄)과 영동정공(令同正公) 휘(諱) 광전고적(光琠古蹟)과 기타 고문적(古文籍)을 구보원문(舊譜原文)대로 권수(卷首
     )에 수록하여 후손으로 하여금 조선발상과정(祖先發祥課程)을 구명추감(究明追感)토록하다.

 해남(海南)과 강진(康津) 양군(兩郡)의 연혁지(沿革誌)를 첨부하여 원근종족(遠近宗族)이 함께 조선(祖先)의 발상유분
     (發祥遺芬)이 깃들어 있는 관향(貫鄕)의 역사를 대개 알도록하다.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유서깊은 유적 또는 제각(祭閣)의 사진과 영동정공(令同正公) 이하 본파상조(本派上祖)의 묘도(墓
     圖)를 첨부하여 영세봉람(永世奉覽)토록하다.

 분파형성표(分派形成表)를 첨부하여 각파 형성의 계통과 그 후손의 세거(世居) 또는 주요 거주지를 일견료연(一見瞭然 )
    케 하다.

 고래의 관직표(官職表)와 연세대조표(年世對照表)를 첨부하여 본보봉람상 참고자과(本譜奉覽上 參考資科)에 공(供)하
     다.

시조 휘상(始祖 諱上)에는 성자(姓字)를 관서(冠書)하고 기하 중조(其下 中祖)부터는 성자(姓字)를 생략하여 계성대본
     (繼姓大本)의 의의를 밝히다.

 시조 휘 존부(始祖 諱 存富) 이하7세는 사적(事蹟)이 실전(失傳)되고 세손만 전하여 사실상의 분파형성은 8세조(八世祖)
     휘(諱) 광전 (光琠) 영동정공(光琠令同正公)부터임으로 금보(今譜)에는 공(公)을 권수 2면(卷首 二面) 수층(首層)에 상
     재(上戴)하여 작보(作譜)의 편의(便宜)을 도하다.

 사적(事蹟) 기재는 경자파보(庚子派譜)와 병진대동보(丙辰大同譜)에 의거하여 불변개(不變改)를 원칙으로 하고 구보 기
     재사항 중에 공사문적(公私文籍)에 의하여도 고징(考徵)이 없으며 또 연대와 설전(說傳)에 모순이 있어서 신의난결(信
     疑難決)한 부분은 기재를 삭(削)하고 후일의 확실한 고증을 기다리기로 하다.

 구보(舊譜)에 누보(漏譜)되었다가 금보(今譜)에 입단(入單)한 종족은 누보채(漏譜債)을 수납(收納)하고 납단(納單)을 검
     토하여 계통(系統)이 분명한 자에 한하여 입록(入錄)한다. 다만 입록자구(入錄字句)를 부(附)하여 전후보의 소목관계(昭
     穆關係)를 명확히하다.

 금보(今譜)에 누단(漏單)된 종족은 병진보(丙辰譜)의 손록(孫錄)까지 일률등재(一律謄載)하고 후일 수보(修譜)시에 연계
     (連系)를 찾도록하다.

 등재(謄載)방법은 구보와 동일하게 일면6층(一面六層)으로하고 동행5세(同行五世)를 종지순서(宗支順序)로 수록하며
     말란(末欄)에는 명휘(名諱)만을 기재하고 연속번호를 부서(附書)하였으며 연속된 혈면(頁面)의 수층당해명의하(首層當
     該名義下)에도 번호를 부서하여 내거연속(來去連續)을 밝히다.

 입록(入錄)은 본종(本宗)을 중요시하여 선남후녀(先男後女)의 순서로 기재하였으며 선녀후서(先女後壻)로 기재하고 서
     자(庶子)의 구시대 관념은 일소(一掃)하다.

 후배(後配)와 첩(妾)의 칭(稱)은 사용치 않고 실배(室配)로 통일사용하다.

 구보에는 미가녀(未嫁女)는 입록치 않고 출가녀(出嫁女)에 한하여서만 그 여서(女壻)의 성명만을 기재함이 관례이었느
     나 금보에는 시대적감각을 나타내기 위하여 납단(納單)에 따라 여역기입(女亦記入)하고 출가녀는 명의(名義)와 여서(女
     壻:사위)의 성명(姓名)과 그 세거지(世居地)를 기입하여 후고(後考)에 공(供)하게하다.

 외손(外孫)의 입록은 2대에 한하였으며 여지녀(女之女)는 생략하여 작보상호번(作譜上浩煩)을 피했고 다만 역사적으로
     나 현실적으로 명성이 현저한 외손은 범주(範疇)외에 취급하였다.

 외성(外姓)은 여서(女壻:사위)의 자(子)에도 성자를 기입하여 본성(本姓)과 이성(異姓)의 혼동을 구별하였다.

 각란의 기재순서와 방법은 다음 각항에 의거하다.

   1. 근세조의 휘(諱)나 생존자의 명(名)에 있어서 구보와 신단(新單)이 상위(相違)된 경우에는 확증을 얻은 후에 신단을 조
       치고 구보명을 병기하다.
   2. 자(字)는 연로자 이외에는 인정치 않았으며, 항열명외에 호명(呼名)이 있는 자는 일명(一名)이라고 첨기(添記)하다.
   3. 호(號)는 구보소재(舊譜所載) 이외에는 인정치 않았으나 이미 사회적으로 널리 호칭받고 있는 호는 예외로 하다.
   4. 연대표시(年代表示)는 구보소재대로 묘호(廟號)와 간지(干支)를 사용하였고 근세에 작고한자 생존자에 한하여는 서기
       년호와 간지를 병기(倂記)하다.
   5. 관직(官職)과 과시(科試)와 훈서(勳敍)는 구보소재대로 따랐으며 직계가 불부합한 점은 관제록대로 시정하다.
   6. 현시의 관직(官職)은 문관(文官)으로는 국가공무원 사무관 이상, 무관(武官)으로는 경찰은 총경이상, 군은 소령이상 별
       정직으로는 면장, 동장과 각급학교교장 교수 및 부교수 공영기업체 또는 금융계의 책임자 이상에 국한하여 기재하였고        공직에 있어서는 국회의원, 도의원, 군의원에 한하다.
   7. 학력(學歷)과 이력(履歷)은 일절생략하고 학위는 석사학위에 한하고, 과시(科試)는 고등고시합격자에 한하다.
   8. 행적(行蹟)은 가급적 간략을 위주로 하고 문행(文行)이 있는자나 향도천(鄕道薦)의 효행이 있는 자나 초범(超凡)의 가
       행(嘉行)이 있는 자에 한하여 기재하였으며 심상일양(尋常一樣)의 행적은 기재를 생략하다.
   9. 처항(妻項)은 성관과 명의를 기재하고 망부칙(亡夫則) 배(配)라 칭하고 부재칙(夫在則) 실(室)로 기재하고 2인 이상의
       처(妻)일지라도 구별않고 동일호칭을 사용하다.
 10. 처사(妻史)는 처의 부 조 증조 외조 사조(四祖)를 기재하고 명조(名祖)와 세거지를 병기하여 후고(後考)에 적(籍)하다.
 11. 묘소(墓所)와 여타 지명 호칭은 현대의 지명호칭을 사용하고 묘소의 좌향(坐向)은 모좌(某坐) 쌍조(雙兆) 합조(合兆) 품
      자조(品字兆)등으로 구분하다.

 입출계(入出系)의 기재는 다음에 의거하다.
   1. 입계자(入系者)의 명휘하에 모권모혈(某卷某頁)로 부터 입계(入系)라 부(附)하고 출계자의 명위하에 모권모혈(某卷某
       頁)에 출계(出系)라고 부(附)하여 상호연계(相互連繫)을 밝히다.
   2. 입계출의 연계을 찾기 어려운 부분은 단지 계자(系子) 출계(出系)만을 기재하고 다시 후일의 고증을 기다리기로 하다.

 구보의 출계(出系)가 금보본가환원(今譜本家還元)은 절대불허하였으나 근세출계자(近世出系者)로서 부득기 본가환귀
    (本家還歸)의 필요가 있다고 인정된 자에 한하여는 당해 파의(派議)를 경(經)하여 환귀(還歸)토록 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