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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및 문헌

 

 사적

 


 

 

 

   우리 해남윤씨에 전해오는 사적 및 문헌을 살펴보면 6세조 환(桓)과 관련된 사적, 금구의록, 금구현정단자가 있으며, 중시조 영동정공에 관련된 자료들이 있습니다. 이들 자료들은 해남윤씨와 관련된 최초의 자료들로써 그 의의가 깊고 중요한 내용들입니다.
   1. 환(桓)에 관한 자료는 우리 해남윤씨 윤환(尹桓)과 칠원윤씨의 윤환(尹桓)이 휘(諱)자가 같아서 혹시나 해남윤씨와 칠원윤씨가 근본(根本)이 같지않나 하였으나  여지승람과 칠원윤씨족보등을 살펴보건데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한 내용이며, 또한 전북 김제 금구에 있다는 환(桓)의 묘소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2. 중시조 영동정공(令同正公)에 관한 자료는 영동정공(令同正公)께서 차자소윤공(次子少尹公)에게 급비(給婢)한 문건과 환(桓)에 대한 내용이며  또한 직장(直長) 소윤(小尹) 양공(兩公)의 지석(誌石)에 관한 내용입니다.

 


 

 

 

 

  1. 事蹟(사적)

 

麗史辛禑朝漆原府院君尹桓嘗乞告歸鄕歲大饑桓散家財以之取貧民稱貸契券焚之時久旱水桓田及民田歲大熟民稱之不己<亦載於漆原譜> 麗史綱紀辛禑六年庚申<大明洪武十三年>以尹桓爲門下侍中十一年乙丑<洪武十八年>前侍中尹桓卒註云桓美風儀好施與歷事五朝三爲首相諡忠孝<忠惠王忠穆王忠定王恭愍王辛禑共五朝公卒後七年麗亡> 輿地勝覽<人物卷漆原懸條>曰麗尹桓本武人歷事五朝三爲首相封漆原伯居柳洞里子岑司馬 漆譜桓夫人晋州柳氏后夫人朴氏諱典書之長女 又漆譜桓五兄第次右副大言次樟漆城君天斅卽其次子<出系於桓>次樺仁寧府左司尹季漆城府院君 又漆譜桓系子天斅 又漆譜云官銜諱稱載於北漢圓覺寺碑陰又在松京鐘磬事蹟多載牧隱集中 漆原邑誌云尹政丞諱桓有子祿和改名岑進士

역문(譯文)

      려사(麗史)를 보면 신우조(辛禑朝)때 칠원부군 윤환(漆原府君 尹桓)이 휴가를 얻어 고향에 돌아오니 때마침 흉년이라 환(桓)이 가재(家財)를 풀어 빈민을 구휼(救恤)하고 대권(貸券)을 불사르니 심하든 한발(旱魃)이 끝이고 환(桓)의 전(田)에서 물이 솟아 민전(民田)에 까지 혜택을 보아 풍년이 들어 환(桓)의 덕택(德澤)을 길이 칭송하다. 려사강기(麗史綱紀)에 신우육년 경신(辛禑六年 庚申)에 윤환(尹桓)으로 하여금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삼고 십일년 을축년(十一年 乙丑年)에 전시중 윤환(前侍中 尹桓)이 졸(卒)하다. 주운환(註云桓)이 풍의(風儀)를 아름답게하며 여흥(旅興)을 즐기여 오조(五朝)를 섬김에 세번 수상(首相)을 지내니 시(諡)를 충효(忠孝)라 하다. 여지승람(輿地勝覽)에 려조(麗朝)때 윤환(尹桓)은 본무인(本武人)으로서 오조(五朝)를 섬김에 세번 수상(首相)을 지내어 칠원백(漆原伯)을 봉(封)하니 유동리(柳洞里)에 거(居)하다. 자(子)는 잠(岑)이니 사마(司馬)니라 칠보(漆譜)에 환(桓)의 부인은 진주유씨(晋州柳氏)요 후부인(后부人)은 박씨(朴氏)니 휘 전서(諱 典書)의 장녀(長女)다.  우 칠보(又 漆譜)에 환(桓)이 오형제가 있으니 차(次)는 자()니 우부대언(右副代言)이요. 차(次)는 장(樟)이니 칠성군(漆城君)이요 천효(天斅)는 그 차자(次子)니라. 차(次)는 화(樺)이니 인녕부좌사윤(仁寧府左司尹)이요. 계(季)는 공()이니 칠성군부원군(漆城君府院君)이라. 우 칠보(又 漆譜)에 환(桓)의 계자(系子)는 천효(天斅)라 하니라 우 칠보(又 漆譜)에 관함휘칭(官啣諱稱)이 북한 원각사 비음(北漢 圓覺寺 碑陰)에 기재되고 또 송경종경(松京鍾磬)에 기재되고 목은집중(牧隱集中)에 다재(多載)하니라. 칠원읍지(漆原邑誌)에 윤정승(尹政丞)의 휘(諱)는 환(桓)이니 자(子)에 녹화(錄和)요 개명(改名)에 잠(岑)이라하니 진사(進士)라.

案漆譜諱桓之官銜諡稱諸般事蹟與麗史輿地相合特其不同者自諱桓二十一代祖諱鉅富<始祖諱始榮>以下至桓子與孫前後二十餘代諸諱與我祖諸諱一不彷彿而諱桓之子諱乃云系子天斅則此與與地所載<子岑司馬>又相予盾矣漆譜自其世傳之家蹟則不可謂誤輿地勝覽之成在我 成宗九年戊戌則去公之卒年乙丑爲九十四年也以當時盧天隱<諱思>之博識國朝明確之公蹟而記九十四年前前朝名相之世代不應誤錯此一疑案終無可矣 以國史轎家乘年代昭穆然不差而漆尹海尹之譜若是相混或以爲意者漆海本是同祖而後乃分派亦不可決也

역문(譯文)

      칠원윤씨족보(漆源尹氏族譜)에 관함시칭 제반사적(官銜諡稱 諸般事蹟)이 려사(麗史)와 여지승람(輿地勝覽)과 상합(相合)하나 특히 부동(不同)한 것은 칠보(漆譜)에 중조 거부이하 이십일대손(中祖 鉅富以下 二十一代孫)이 환(桓)이라 기간 이십여대의 자여손(子與孫)의 휘(諱)가 우리 선조의 제휘(諸諱)와 하나도 방불(彷彿)함이 없고 또는 환(桓)의 자에 계자 천효(系子 天斅)라고 써있으니 여지승람(輿地勝覽)의 기록한 바와 모순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칠보(漆譜)는 자기 문중의 세전한 가적(家蹟)인지라 오기(誤記)함이 없을 것이요, 여지승람(輿地勝覽)은 이조 성종구년 무술년(李朝 成宗九年 戊戌年)에 비롯된 것이니 공(公)이 졸(卒)한 을축년으로부터 헤아리면 구십사년이라 당시 노천은(盧天隱)같은 박식으로 국조(國朝)를 찬(撰)할새 공적에 명확하였다 할지라도 구십사년전 명상(名相)들의 세대에 오착(誤錯)이 없을 것이냐 하는 점이 의심할 바다. 우연히도 칠보(漆譜)의 양대 휘자(兩代 諱字)와 우리 선조의 양대 휘자(兩代 諱字)가 같음으로해서 혹시나 근본(根本)이 같지나 않나 하는 것은 억측(臆測)에 불과하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