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헌공가훈은 1660년 경자년에 고산 윤선도 선조께서 장자이신 윤인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고산유고에는 기대아서(寄大兒書)라고 되어 있습니다.

汝之錦山三製。見之賦最勝。雖居異等。無足怪也。而至於見屈。可歎。然鋪敍中納約之下。解題事實。略之太過。是欠也。策亦好矣。而逐條題意。太略而沒實。同一欠也。大?場屋程文。寧過於詳而不可過於略。寧過於密而不可過於疏。此意不可不知也。且須着意細看古今文字。得其轉換承接之妙。然後乃可作文無欠。若不沈潛於古人文法。徒使些少才氣於文字之間。則必有鹵莽滅裂之弊。尤不可不知也。每榜皆落莫。固是不勤之致。而原其本則出於天不佑也。得天佑惟在積善。汝曹不可不知也。況兒孫幾盡不?育。絶祀可慮。尋常恐懼。可勝言哉。

汝曹不可不以修身謹行積善行仁爲弟一急務也。汝曹亦曾念及乎此否。漢之文,景。節儉爲事。屢?民租。而子孫三興。細思歷代靑史則無不皆然。雖以吾家先世言之。高祖勤於稼穡。取於奴僕最薄。故曾祖昆季勃興。一門鼎盛。靈光祖父主雖不爲不義之事。似留心於爲富。故生育衰絶。杏堂,拙齋兩族曾祖皆不能體高祖家規。故子孫皆陵替。天報之昭昭。此可知也。高曾祖以節儉而興。後代之事。隨俗華美。漸不如先世之風而衰。易理以月旣望爲大戒。及滿招損謙受益等語。無非至敎。可不銘心刻骨。吾家所當損者。思而錄之于左。汝其?念毋忽。

一。衣服鞍馬凡百奉身者。皆當改習省弊。食取充飢。衣取蔽體。馬取代步。鞍取堅牢。器取適用可也。所騎只求可以涉遠者一二頭。以備行路而已。何必要能步也。靑草刈時。雖家牛隻不可用也。況可用奴戶及洞人之農牛耶。非徒人必苦之。大不合於事理。如此等事。自今絶勿爲之。只?一二卜馬載取可也。吾於五十後。衲紬衣,苧?衣始試爲之。而在鄕時曾見汝服衲紬衣。心甚不悅。蓋此兩物。大夫之服。而大夫而不爲者猶多。況笠下之人而可衣大夫之服乎。如此服飾。須斥去不御。以崇儉德可也。大?此等物。須近於樸。毋近於侈。稱此以永。一可知十。諸葛武侯之言曰。非澹泊無以明志。非寧靜無以致遙。旨哉言乎。戒之勿忘。丹書曰。敬勝怠者吉。怠勝敬者滅。忽亦怠也。怠之害乃至於滅。豈不寒心。須以敬存心。毋敢斯須有忽於斯。婦人之服。則年老則用紬。年少則雜用紬綿。勿用綵段可也。

一。奴婢之貢。高祖時則每名常木一疋定式。而其後或加或減無常矣。今則定式如何。奴則?五尺平木密織者二疋。婢則疋半。貧者役多者則量減。富者勿加。以此爲定式可也。

一。仰役奴婢。不可不厚恤。須用損上益下之道。益減主家自奉。而每優奴婢衣食。使仰活於我者無所艱苦而含怨。至可。且逐日所役。須限不盡其力定式敎之。且奴婢雖有所失。小則敎之。大則略笞。每令有撫我之感。無虐我之怨可也。在上之道。惟當以寬爲主。婦人性偏。不可付刑杖之權。笞亦定式。使無敢過。不敢爲手自雜打事。亦須善喩嚴戒也。

一。或有大運力外其他細小雜役及尋常使喚等事。只任家內奴婢。勿使戶奴。使其優游而自盡於力本有生之樂。洞人尤不可種種使之。如此等事。須留念察之。忍耐過了可也。

一。祈嗣一節。須以入門求嗣條及祈嗣眞詮爲主。勤而行之。至當至當。不信至人之言。而信盲人之指示乎。左道巫卜之說。塞耳斥之。使婦子毋惑也。眞詮十篇中末篇祈禱。而所謂祈禱者。不過尼丘山之意也。無孔?之積善而禱之。則不亦益神之怒乎。況從巫俗無稽之說而禱之乎。非徒無益。而又害之者。此等之謂也。不但可笑而已也。眞詮以改過遷善爲第一急務。上面所云之事皆此類也。念之念之。爲求嗣祈禱重也。而猶不可爲之。況其他神事乎。一切斥絶。以正家道。更須激?毋墮。

一。自前遠近奴婢每以貿販爲悶。僧奴處簡在時力言於我。而我不卽令改。悔吝可勝。吾所命南草之販。自前從時直。?無所損於受者。後亦當然。而今?若得送京則尤無授受之弊也。此外一應貿販。汝先勿爲。而以我言痛禁諸子弟家。一切勿爲。汝須勿爲兄弟而欺父兄也。

一。今?雖爲船卜。而使奴輩爲格。則仰役奴外。皆准時加減給格價。

一。聖賢經訓則自汝曹解語時吾所提耳而誨者也。小學是做人底樣子。學者當以此爲主者。亦於一生言語文字間。勤勤懇懇於汝曹者也。今不須瀆告也。但有時靜坐。着意閑看小學。則必有新得。且將經傳循環細玩。則無非?伏身心之助。此皆一生當務。而至死不可變者也。

一。吾家興滅。在此一紙。切勿泛視。且令孫兒輩銘讀勿忘。

네가 금산(錦山)에서 지은 세 편의 글을 보았는데 그 중에서 부(賦:詩歌)가 가장 좋았다.
상등(上等)이라 하여도 괴이할 것 없는데도 떨어졌으니 가탄(可嘆)스럽다. 그러나 서술한 문장 중에서 약약(約約)의 아래 사실에 대한 해석이 너무 간략하여 그것이 흠이었다. 책(策)도 좋았지만 축조(逐條)해서 쓴 의미가 너무 간략하여 사실적인 면이 너무 부족하니 이 역시 흠이다. 대체로 과장에서의 정문(程文:과거에서 쓰는 일정한 법식의 문체)은 너무 간략한 것보다는 차라리 너무 자상한 것이 낫고, 너무 엉성한 것보다는 차라리 너무 치밀한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고금(古今)의 문자를 유념해서 자세히 보아, 돌려서 표현하거나 바로이어서 표현하는 등의 묘(妙)를 터득한 뒤에 작문(作文)을 하여야 흠이 없게 되는 것이다. 만일 옛사람의 문법을 연구하지 않고 공연히 문자간에 잔재주를 부린다면 거칠고 지리멸렬하는 폐단이 있게 마련이니 더욱 알아두어야 한다.
방(榜:과거 합격자 명단)이 붙을 때마다 낙방을 하는 것은 참으로 근면하지 못한 소치이고, 그 근본을 따져보면 하늘의 도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의 도움을 받는 것은, 적선을 하는 데 있다는 것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더구나 자손의 거의가 산육(産育)되지 못하니 대가 끊길까 염려되어 언제나 두려운 마음과 말로써 다할 수 없구나.

너희는 수신(修身)과 근행(勤行)으로 적선하고 인자한 행실을 제일 급선무로 여겨야만 된다. 너희도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한나라때의 문제(文帝)와 경제(景帝)는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하여 여러번 백성의 세금을 줄여 주었는데, 그 뒤로 삼대가 융성하였다. 역대의 청사(靑史)를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그러하다.
우리 가문 선세(先世)의 일을 두고 보더라도, 고조부(高祖父)께서는 농사에 근면하셨는데 노복(奴僕)들에게는 적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증조부(曾祖父)의 형제가 발흥(勃興)하여 가문이 안정되어 융성하였고, 영광공(靈光公) 조부(祖父)께서도 불의한 일은 하시지 않았지만, 부자가 되려는 마음을 가지신 듯하였기 때문에 자손이 끊겼다. 행당(杏堂, 휘:復), 졸제(拙齊, 휘:行) 두 족증조(族曾祖)께서도 모두 고조(高祖)의 자규(字規)를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손이 모두 융성하지 못했으니 하늘의 응보(應報)가 분명하다는 것을 이것으로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고조(高祖)와 증조(曾祖)는 절검(節儉)으로 가문을 일으켰고, 후대에는 세속의 화미(華美)를 따라서 점차로 선세의 풍도(風度)와 달라져서 쇄약해졌다.
주역(周易)의 이치에서도 보름달이 기우는 것을 가지고 크게 경계하였고 '자만하면 손해가 있고 겸손하면 이익이 있다'는 등의 말은 매우 훌륭한 교훈이니 마음과 골수에 새기어 두지 않을 수 있겠느냐?
우리 가문에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생각하여 다음에 기록하니 너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1. 의복이나 안장이나 말(馬) 등 몸을 치장하는 모든 것을 모두 구습을 버리고 폐단을 없애야 한다. 음식이란 배를 채우는 것으로 족(足)하고, 의복이란 몸을 가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말(馬)이란 걸음을 대신하는 정도로 만족해하고 안장(鞍)은 견고한 정도로 만족해야 하며, 모든 기구는 필요한 데에 알맞도록 사용해야 한다. 타는 말은 멀리 갈 수 있는 것으로 한 두 마리 정도로써, 길을 다닐 수 있을 정도로만 대비하면 되는 것이니, 어찌 잘 달리는 것만을 요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더구나 언제나 망아지를 길러서 이익을 보는 것은 사대부의 큰 병통이니, 언제나 내가 너에게 병되이 여기는 것이다. 너는 그 일을 중지할 수 없겠느냐?
생부(生父: 惟深)께서는 망아지를 길러서 이익을 본 일은 없지만 등공(鄧公:당나라때 사람, 말을 좋아함.)의 버릇이 조금은 있었고, 정이천(程伊川)의 사냥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일이 있었으니 이는 선세에는 없던 일이다. 대부(大父:할아버지)께서 그 점을 병되이 여겨 시를 지어 깨우치려 하시기까지 하셨으나 끝내 버리지 못했으니 이 병통이 재앙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형(兄)께서도 말을 길렀고 너도 평생을 그 일에 종사하고 또 사치를 힘쓰니 이는 모두 남자다운 덕이 아니다. 학문에 힘쓰면서도 조그만 명성도 얻지 못하여 후사(後事)가 곤궁하게 되었으니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너는 지난일이 옳았다고 하지 말고 또 나의 이 말을 노망한 소리라고 하여 소홀히 여겨 경계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풀을 벨 때에는 소는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구나 노속(奴屬)이나 동리사람의 농우(農牛)를 사용해서야 되겠느냐? 이는 사람을 괴롭힐 뿐 아니라 사리(事理)에도 절대 합당하지 못하니 이런 일을 이제부터는 절대 하지 않도록 하여라. 다만 한 두 마리의 짐말만으로 실어오도록 하여라.
나는 50이 넘어서야 명주옷이나 모시옷을 처음 입었는데, 시골 있을 때 네가 명주옷을 입은 것을 보고 몹시 불쾌했었다. 대체로 이 두 종류의 옷은 대부(大夫)가 입은 옷으로서 대부(大夫)들도 입지 않은 이가 많은데, 더구나 평민으로서 대부(大夫)의 옷을 입어서야 되겠느냐? 이런 복식(服飾)은 모름지기 물리쳐 가까이 말고 검소한 덕을 숭상하도록 하여라. 대개 이러한 것은 소박한 것으로 하고 사치스러움을 멀리해야 하는 것이니 이런 기준에 맞추어 구한다면 무슨 일이든 모두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날 제갈무후(諸葛武候:제갈량)는 "담백함이 아니면 뜻을 밝힐 수가 없고, 안정이 아니면 원대함을 이룰 수 없다."고 했는데 참으로 의미가 깊은 말이다. 경계로 삼아 잊지 말도록 하여라. 또 단서(丹書)에는 "조심하는 마음이 태만함을 이긴 자는 길하고, 태만이 조심하는 마음을 이긴 자는 멸망한다."고 하였는데, 소홀히 여기는 것도 태만한 것이다. 태만하는 데서 오는 해가 멸망에 이르까지 이르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느냐?
이석(爾錫)이 독자(獨子)로 그 자모(慈母)의 편애(偏愛)를 받았고, 그 처(妻: 靑松沈氏)는 비록 어질지마는 부성(婦性)이 사리를 알지 못하고 오직 부가(夫家:시가)에서 복식(服飾)으로 일을 삼으니, 만약 장물(長物:좋은 물건)이 있거나 분수에 맞지 않는 옷이 있을 것 같으면 이것은 이석(爾錫)의 잘못이다. 상세히 살펴서 자세히 깨우쳐주어 다른 사람들보다 옷이 아름다운 과오나 재앙이 생겨나고 복이 지나쳐 버리는 환이 없도록 해라. 부인(婦人)의 의복은 나이가 들면 명주를 입고 나이가 적을 때는 명주와 면(綿)을 섞어 입고, 비단을 쓰지 않는 것이 가하다.

1. 노비(奴婢)의 신공(身貢)은 고조시(高祖時)에는 노비 1명에 각각 상목(常木: 베) 1필로 식(式)을 정했는데, 그 후에 혹은 더하고 혹은 덜어서 상식(常式)이 없었다. 지금의 정식(定式)은 어떠한가? 노(奴)는 35자 평목(平木: 조밀하게 짠 것) 2필, 비(婢)는 1필 반인데 가난한 자로 역(役)이 많은 사람은 그 양(量)을 덜어주고 부자(富子)는 더하지 않는다. 이것으로써 정식(定式)을 삼는 것이 옳다.

1. 앙역노비(仰役奴婢: 부리는 노비, 使役奴婢)는 가히 우대해주고 구휼하지 않으면 안되거늘, 위(上: 주인家)를 덜고 하(노비家)를 더하는 도로써 주인가의 자봉(自奉)을 더하고 줄이며, 매번 노비의 의식(衣食)을 우대하여 나를 바라보고 사는 자로 하여금 가난하게 하거나 고통스럽게 해서 원(怨)을 품는 자가 없도록 하는 것이 지극히 가하다.
또 날마다 사역하는 것이 그 힘을 탕진하지 않도록 제한을 두어, 정식으로 삼아 가르쳐라. 또 노비가 비록 과실이 있더라도 작은 일이면 가르치고, 큰 일이면 매로 다스려, 언제나 '나를 돌보아 주는구나'하는 생각을 갖도록 하고 '나를 학대한다.'는 원망이 없게 하는 것이 좋다.
이석(爾錫)의 아내는 좋은 부인이지만 아래를 다스림이 너무 준엄하니 깊이 우려된다. 윗사람의 도리는 관대함이 우선인데 부인의 성품이란 좁은 것이니 형벌쓰는 권리를 맡겨서는 안된다. 매 때리는 것도 법을 정하여 감히 지나치지 못하도록 하고, 손 가는대로 구타하지 못하도록 잘 타이르고 엄하게 경계하여라.

1. 혹 대운력(大運力)을 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타 자잘한 잡일이나 일반적인 심부름은 집안의 노비를 시키고 호노(戶奴: 별도로 가정을 가지고 밖에서 사는 집안의 노비)는 부리지 말도록 하여라. 그들에게는 여유를 주어 그들의 하는 일에 열중하도록 하여 즐거움을 갖도록 해야 한다. 동리 사람들은 더욱이 자주 부려서는 안된다. 이런 일들은 모름지기 유념하여 잘 살펴서 인내를 가지고 넘겨야 한다.

1. 기사(祈嗣: 아들 낳기를 비는 것.)에 관한 것은 반드시 입문(入門: 醫學入門)의 구사조(求嗣條)와 구사진전(求嗣眞詮)으로 위주하여 조심히 행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지인(至人: 도덕이 훌륭한 사람)의 말은 불신하면서 맹인(盲人)의 지시를 믿어서야 되겠느냐? 사특한 도(道)와 무복(巫卜)들의 말은 귀를 막고 물리쳐 부녀자들이 의혹되지 않도록 하여라.
진전(眞詮)의 10편중에 본편(本篇)이 기도하는 법인데, 기도(祈禱)라고 하는 것은 니구산(尼丘山)에서 공자(孔子)의 부모가 기도했던 그런 의미에 불과하다. 공자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안씨 같은 적선이 없고서 기도를 한다면 니 역시 신의 노여움을 더 사지 않겠느냐? 더구나 무속(巫俗)의 근거없는 말을 따라 기도해서야 되겠느냐. '무익할 뿐 아니라 해가 있다.'라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참으로 가소로운 정도가 아니다.
진전(眞詮)이란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 것을 제일의 급선무로 삼고 있으니 위에서 한 말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깊이 생각하여라. 아들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중대한 일도 오히려 해서는 안되는데 더구나 다른 신을 섬겨서야 되겠느냐. 일체 끊어 가문의 도를 다시 바로 세워서 실추(失墜)됨이 없도록 하여라.

1. 예전부터 원근(遠近)의 노비들이 언제나 장사해 보라는데 고민을 하였다. 승노(僧奴: 중의 신분인 종)인 처간(處簡)이 있을 때에 나에게 그 점을 역설했었는데 내가 즉시 개선하지 못하여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남초(南草: 담배)를 팔아오라고 시킨 경우에는 전부터 시가(時價)에 따라 하여서 받는 자가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였었는데, 후에도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 이제 만일 서울로 보내게 되면 더욱 주고받는 폐단이 없을 것이다.
이밖에도 모든 판매는 네가 먼저하지 말아라. 내 발로 모든 자제의 집안을 엄히 금하여 일체 하지 말아라. 너는 형제를 위한다 하여 부형(父兄)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1. 이제 비록 배짐(船卜)이라 하여도 노비를 선격(船格: 배를 부리는 곁꾼)으로 앙역노(仰役奴)이외에는 모두 때에 따라 조정해서 곁꾼의 품삯을 지급하여라.

1. 성현(聖賢)의 평전(評傳)에 대한 훈계는 너희가 말을 알아들을 때부터 내가 귀를 붙들고 가르쳤던 것이다. 소학(小學)은 사람을 만드는 것으로서 학자는 당연히 이것을 위주로 해야 한다. 평생동안 언어와 문자간에 너희가 부지런히 힘써야 하는 것이니 이제 다시 번거롭게 말하지 않겠다.
다만 때로 고요히 앉아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가로이 소학(小學)을 보면 반드시 새로이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전을 번갈아 가면서 자세히 보면 신심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있을 것이다. 이는 모두가 일생을 두고 힘써 죽을 때까지 그만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1. 우리 가문의 흥성과 멸망이 이 한 장의 종이에 있으니 절대 범연히 보아넘기지 말아라. 그리고 손자아이들에게도 명심해서 읽도록 하여 잊지 않도록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