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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季軫墓誌銘 戊午

윤계진(尹季軫)의 묘지명 무오년(1798, 정조 22)

윤욱경(尹燠卿)이 처음에 해남(海南)에서 서울에 왔다. 내가 그 외모를 보고 그 온축(蘊蓄)을 물어보고서 기뻐하여 윤씨(尹氏) 제인(諸人)에게 고하였더니, 윤씨 제인이 웃으면서,
“그대가 욱경을 보고 이처럼 기뻐하니, 계진을 보게 되면 그대는 미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수년 뒤에 계진이 왔다. 와서는 명례방(明禮坊)으로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모(某)가 친척을 떠나고 향리(鄕里)를 버리고 천리 밖에 객유(客遊)하는 것은 공을 따르기 위함이니, 공께서는 공의 힘을 다하여 인도하여 주십시오.”
한다. 내가 그 외모를 보니 옥수(玉樹)가 바람에 임한 듯 아름다워서 무례히 할 수 없었고, 그가 지은 문장은 모두 영롱하고 아름다워 뛰고 움직여 잡을 수 없었다.
계진의 장인 전 개천 군수(价川郡守) 이빈(李彬)이 창덕궁(昌德宮) 남쪽에 작은 집을 사서 계진에게 살게 하고 마음대로 유학(遊學)하도록 하였다. 계진이 그 집을 받기는 하였으나 늘 나에게 묵게 하고 그 아내로 하여금 조석으로 끼니를 나르게 하였다.
무릇 나에게 묻는 바가 있어서 내 말이 입에서 나가자마자, 계진은 이미 손을 흔들어 중지시키면서,
“나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한다. 내가 기술하는 바가 있을 적마다 계진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여겨보며 깊이 음미하여 침을 삼키는 소리가 꿀꺽꿀꺽 목구멍에서 나왔다.
내가 곡산(谷山)으로 부임할 적에 계진이 술 한 잔을 따라서 나에게 권하는데 그 안색이 참담하였다. 수개월이 지나 계진이, 자기 소작의 절구(絶句) 30여 수를 학가(學稼)에게 부쳐서 나에게 보이는 것이었다. 내가 보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계진이 죽겠구나.”
하였더니, 학가는,
“무엇 때문입니까?”
한다. 내가,
“그 시사(詩詞)가 처량하고 스산하며 유열(幽咽 그윽이 흐느낌)하여 귀어(鬼語)가 많고, 자획(字劃)이 삼송(森竦 삼엄하게 선 모양)하여 진토(塵土)의 기미가 한 점도 없으니, 세상에 오래 살 사람이 아니다.”
하였다. 수개월 뒤에 부음(訃音)이 이르니, 그때 나이 28세이다. 아, 애석하도다.
계진의 휘는 지익(持翼)이요, 욱경은 그 형이다. 아버지의 휘는 굉()이고 조부의 휘는 덕희(德熙)이니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로 우리 외조부의 백씨(伯氏)이다. 6세조는 고산 선생(孤山先生) 휘 선도(善道)이니 예조 참의이다. 윤씨는 대대로 해남에 살았다. 명은 다음과 같다.

훨훨 날아 세상에 왔다가 / 其來也翩翩
훨훨 날아 세상을 떠났도다 / 其逝也翩翩
보아도 그 자취 보이지 않고 / 視之不見其跡
생각하니 아름다운 얼굴 보는 듯하네 / 思之如覿其嬋娟
희롱이 참이 되어 버렸으니 / 以戱爲眞而受之
껄껄 웃으며 손뼉 치는 것은 신선들일레 / 呵呵拍手者羣仙

尹燠卿始自海南至。余見其貌叩其蘊而悅之。以告諸尹。諸尹笑之曰子見燠卿而悅之如此。若見季軫者。子其狂矣。後數年季軫至。至則訪余于明禮坊而語之曰。某之離親戚棄鄕里。千里而客遊者。爲從公也。公其竭公之力而誘掖之。余觀其貌若玉樹之臨風。婷婷乎其不可褻也。而其所爲文。皆玲瓏絢纈。跳動而不可捉也。季軫之婦翁。前价川郡守李彬。爲買小屋于昌德宮之南。令季軫居之。而縱意遊學。季軫雖受之。常於我乎宿。而令其妻傳餐。凡有所叩於余。言發於口。而季軫已搖手止之曰我知之矣。余每有所記述。季軫輒潛心注目而深味之。吞涎之聲。汨汨乎出於咽也。余之赴谷山也。季軫酌一琖勸余。其色慘然。旣數月。季軫寄所作截句三十餘首於學稼。令以示余。余覽之流涕曰。季軫死矣。學稼曰何哉。余曰其詞悽酸幽咽多鬼語。而字畫森竦。無一點塵土氣。非久於世者也。後數月而訃書至。時年二十八。嗚呼惜哉。季軫諱 持翼。燠卿其兄也。父諱 。祖a281_359a諱 德熙 義禁府都事。余外祖父之伯氏也。六世祖孤山先生諱 善道 禮曹參議。尹氏世居海南。銘曰其來也翩翩。其逝也翩翩。視之不見其跡。思之如覿其嬋娟。以戲爲眞而受之。呵呵拍手者羣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