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10월 경기도 광주시 송정리에 있던 고산 윤선도의 생모(生母) 순흥안씨(順興安氏· 1551~ 1609)와 맏형 윤선언(尹善言·1580~1628)의 무덤을 이장하면서 관 안에 채워 넣은(보공·補空) 저고리와 수의 등 12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윤선언의 복식 중 단령(團領), 답호, 철릭 등은 여러 번 고치거나 줄인 흔적이 있었다. 또 길이나 깃, 소매의 크기나 모양이 서로 다른 것으로 볼 때 할아버지가 입던 옷을 아버지가 고쳐 입고 다시 윤선언의 수의로 사용, 3대에 걸쳐 입은 것으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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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령(團領)이란 조선 말기까지 모든 관원이 평소 집무복으로 착용한 상복().

옷깃이 둥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대개 상복은 단령·사모·띠[]·화()로 구성된다. 조선시대의 관복은 제복()·조복()·공복()·상복()·시복()·융복() 등이었는데, 공복·상복·시복이 단령이었다.

단령은 원래 중국 당()나라에서 신라로 전래되어 진골대등()에서 서민까지 모두 착용했으며, 계급에 따라 옷감과 띠에 차이가 있었다. 고려시대에도 1~9품의 관리와 천인계급인 순군()·나장()·소유()까지 착용했는데, 천인계급은 조의(?:검은 옷)를 입도록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품~9품의 관리와 유생이 입었고, 특히 왕이 입은 용무늬가 있는 단령을 곤룡포()라 한다. 천인계급으로 별감과 인로()는 청단령, 형조·사헌부·전옥서는 조단령, 사간원사()는 황단령, 조례(노예)는 청단령을 착용하였다. 단령의 형태는 옷깃이 둥글고 섶이 있으며 무가 특이하게 만들어졌다.

조선 전기에는 홑옷으로 옷깃이 턱밑까지 패었고, 무도 뒤로 접히지 않고 옆선이 터졌으며, 옷고름이 없고 매듭단추가 있으며 소매가 좁았다. 후기에 많은 변화를 거쳐 말기에는 겹옷으로 되어 안감에 안깃이 따로 붙어, 입으면 마치 속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단령에는 흉배()를 붙이는데, 계급에 따라 무늬가 달랐으며, 가슴과 등에 똑같은 무늬를 수놓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