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성원종공신록권(扈聖原從功臣錄券)

宣祖38(1605)

 

을양호성원종공신1등(乙良扈聖原從功臣一等) 전(前) 도사(都事) 윤동로(尹東老)

을양호성원종공신2등(乙良扈聖原從功臣二等) 강원관찰사(江原道觀察使) 윤유기(尹唯幾)

을양호성원종공신3등(乙良扈聖原從功臣三等) 인의(引儀)  윤장(尹璋)

 

 

敎扈聖功臣信城君珝書는 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까지 호종하는데 공을 세운 호성공신(扈聖功臣)을 책록하고 내린 교서이다. 공신도감에서 왕명을 받아 수행했는데, 윤유기(尹唯幾)가 제진하고 한호(韓濩)가 필사한 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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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피난시 선조가 의주(義州)까지 어가를 호종하는데 공을 세운 사람을 호성원종공신에 훈호하고 원종공신에게 등급에 따라 녹권(錄券)한 내용을 목활자로 공신도감에서 인쇄한 성책문서. 공신도감목활자본 1책.

국가나 왕실을 위해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던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을 공신이라 하는데, 배향공신(配享功臣)과 훈봉공신(勳封功臣 또는 勳號功臣)으로 분류되며, 특히 훈봉공신은 다시 정공신(正功臣)과 원종공신으로 나누어진다. 배향공신은 임금이 죽어서 위패를 종묘에 모신 뒤 생전에 그 임금에게 특별한 공로가 있는 신하의 신주도 같이 모시기도 한다. 훈봉공신은 훈공을 나타내는 명호(名號)를 주며 등급을 1등에서 3등(또는 4등)까지 나누어 포상하였다. 이러한 공신구분은 중국의 제도를 모방한 것으로서, 신라 때 벌써 녹공했다는 기록이 보이고는 있으나, 공신호(功臣號)를 설정했는지의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그 후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 것으로는 고려의 개국공신에 대한 것이다. 왕건(王建)을 왕으로 추대한 공로로 홍유(洪儒) · 신숭겸(申崇謙) · 배현경(裵玄慶) · 복지겸(卜智謙) 등이 고려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이 밖에도 각각 공을 세운 정도에 따라 상을 내려 주어 훈봉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원종공신은 정공신 이외에 작은 공을 세운 사람에게 준 공신 칭호이다. 정공신의 자제 및 사위 또는 그 수종자(隨從者)에 대한 시상으로, 본래는 원종공신(元從功臣)이라 했으나 휘(諱)하여 ‘원(原)’으로 고쳐 썼다. 조선을 건국한 뒤 개국공신을 정하고 이 개국공신을 도와 태조의 잠저(潛邸)에서 일을 보거나 공신의 자제로서 공이 있는 자 1,000여 인에게 개국원종공신의 칭호를 준 것을 시작으로 한다. 원종공신은 3등으로 구분해 각각 등급에 따라 녹권 · 노비 · 토지 등을 주었다. 이것이 선례가 되어 그 뒤 공신의 상훈이 있을 때마다 원종공신을 정하였다. 왕은 특히 정공신과 회맹(會盟)했는데, 여기서 공신들은 나라에 충성할 것과 자손대대로 서로 친할 것을 맹세하면서 공신 회맹제를 시행하였다. 왕은 공신들에 대해 공을 세운 정도에 따라 분류, 각 등급에 해당하는 영작(榮爵)과 토지 · 노비 등을 주고 자손들에게도 음직(蔭職)을 주었다. 공신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기관으로는 공신도감 · 충훈부(忠勳府) · 녹훈도감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내용을 보면, 선조 37년(1604)에 공신을 세 등급으로 나누어, 1등에는 이항복(李恒福) · 정곤수(鄭覡壽)가 녹훈(錄勳)되었으며, 충근정량갈성효절협력호성공신(忠勤貞亮竭誠茸節協力扈聖功臣)이라 하였다. 2등에 신성군(信城君) · 정원군(定遠君) · 이원익(李元翼) · 윤두수(尹斗壽) 등이 녹훈되었는데, 충근정량효절협책호성공신(忠勤貞亮茸節協策扈聖功臣)이라 하였다. 3등에는 정탁(鄭琢) · 이헌국(李憲國) · 유희림(柳希霖) 등이 녹훈되었는데, 충근정량호성공신(忠勤貞亮扈聖功臣)이라 하였다.
이들 공신에게는 등급에 따라 특전이 주어졌는데, 1등 공신에게는 본인과 부모처자에게 각각 3계의 관계(官階)를 더해주고, 반당(伴貴) 10인, 노비 13구(口), 구사(丘史) 7인, 전(田) 150결, 은자(銀子) 10냥, 내구마(內俓馬) 1필을, 2등 공신에게는 본인과 부모·처자에게 각기 2계의 관계를 더해주고, 반당 6인, 노비 9구, 구사 4인, 전 80결, 은자 7냥, 내구마 1필을, 3등 공신에게는 본인과 부모·처자에게 각기 1계의 관계를 더해주고, 반당 4인, 노비 7구, 구사 2인, 전 60결, 은자 5냥, 내구마 1필을 주었으며, 적장(嫡長)에게 그 녹을 세습하도록 하였다.
선장본(線裝本) 형식으로 제책되어 있어 일반적으로 선초의 권자본 형식의 녹권이나 교서와는 외형적으로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녹권의 크기는 34.6 x 22.0㎝며, 인쇄된 본문의 변란의 크기는 26.4 x 17.6 ㎝이다. 반엽은 10행으로 한 행에는 19자씩 배자되어 있다. 인쇄면의 중앙에는 판심으로 구분하여 서명과 장수를 표시하고 있으며, 어미는 상하에 3엽화문어미가 내향하고 있다. 서체 또한 갑인자체를 충실히 모방하려는 흔적을 엿 볼 수 있다. 녹권은 전체 40장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기재되어 있다.
권수에 ‘扈聖原從功臣錄券’이란 녹권명이 기재되어 있으며, 다음의 제2행에는 수급자인 ‘前參奉 成(<력>상수리나무)’이 보이고 있으며, 녹권의 형식상 6행에 걸쳐 ‘施命之寶’라는 어보(御寶)가 분명하게 날인되어 있다. 그리고 제3행 이하에는 왕명의 전지(傳旨)를 봉명한 만력 33년의 일자와 봉명자인 도승지 신흠(申欽), 그리고 왕명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전지의 내용 다음에는 1등 공신으로부터 3등 공신까지의 명단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는데, 각 등급 사이의 구분은 음각한 묵개자(墨蓋子)형식의 매목(埋木)으로 구분되어 있다. 3등 공신의 명단에 이어 각 등급에 따른 포상내용이 규정되어 있다. 말미에는 호성공신도감의 당상(堂上), 낭청(郎廳), 감교낭청(監校郎廳) 등의 명단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다.
2편의 전지(傳旨)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공훈을 설명하고 녹훈 대상자의 직역(職役)과 이름을 열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포상을 규정한 것이다. 공신명단에는 종친을 비롯하여 경사대부의 고위관료층과 일반 백성, 그리고 심지어 노비 등이 포함된 다양한 계층의 인물이 수록되어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포상규정은 본인에 대한 가자(加資), 자손에 대한 음직(蔭職) 서용의 혜택, 부모에 대한 봉작(封爵), 후손에 대한 가자, 본인이나 후손의 죄에 대한 처벌의 면제 등을 담고 있어 조선시대 정치사 및 신분사 연구에 참고할 수 있는 기초 사료이다. 이 호성원종공신녹권은 국립도서관외에 규장각 등에도 여러 사람에게 발급된 녹권이 다수 전하고 있다. (송일기)